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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 이채연을 위한 변명

케이팝

by mc wannabe 2021. 9. 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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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인기네요. 엠넷 오디션 방송이 <프로듀스 48>이 끝나고 침체기에 빠진 이후 최고의 히트작이 아닐까 합니다. 흥행 원인은 알기 쉽죠. 댄스 배틀은 새로운 장르고, 출연진들이 매력 있고 캐릭터가 다채롭다는 점이겠죠. 댄스 경연 방송은 많이 있었습니다. 멀리 가면 <댄싱 9>이 떠오르고요. <스우파>는 케이팝 내부의 댄스 신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이 다르겠네요. 케이팝은 국내외에서 인기가 뜨거운 장르인데, 그 안에서 블루 오션을 찾아낸 거죠. 그리고 아이돌을 가르치는 댄서들이 출연해서, 아이돌과 레벨이 다른 춤 실력을 보여주니 눈이 번쩍 뜨이는 매력도 있습니다. 출연진들은 벌써 스타가 됐고, 시청자들인 그들의 작업물과 프로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게 다시 방송 인기에 피드백이 되는 거겠죠. 

바로 그 "아이돌과 레벨이 다르다"는 게 논점입니다. 아이즈원 메인 댄서였던 이채연이 이 방송에 출연을 했는데요. 혼자만 아이돌이다 보니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게 됐죠. 댄서들 방송에 왜 나온 건가, 라는 의문이 방송 내외부에서 나왔고 배틀 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채연은 어린 시절부터 방송에 출연하며 댄스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지금도 춤 잘 추는 여자 아이돌 하면 몇 손가락에 꼽히는 아이돌이고요.

 

저는 이런 평가가 잘못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우파>에 나온 모습을 보고 그녀의 실력이나 지금껏 쌓은 네임 밸루, 커리어까지 평가 절하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인정을 해야 해요. 아이돌과 댄서는 춤이란 교집합을 갖고 있지만 방향성이 다른 직업입니다. 댄서들은 안무를 창작하고 댄스 자체에 집중하는 다이내믹하고 스킬풀 한 댄스를 보여주는 직업입니다. 그 안에서 장르도 나뉘고 각자의 특기도 나뉘죠. 반면 아이돌은 무대 위에서 종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직업이에요. 안무 창작이나 댄스 배틀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걸 해보라고 배틀을 붙여 놓으면 누가 잘할 수 있겠습니까. 이채연뿐 아니라, 춤 잘 춘다고 소문난 그 어떤 아이돌이 나와도 마찬가지일 거라 봐요. 전문성과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만약 누군가 이채연의 <스우파> 출연에 이의제기를 하고 싶다면 이채연이 아니라 방송 제작진에게 화살촉이 향해야 합니다. 이채연이 자원해서 나온 방송이 아니에요. 엠넷이 섭외를 한 거고, 음악 전문 대형 방송국에서 기획사에 제의를 한다면, 기획사가 제의를 접수했다면, 일개 아이돌이 거절할 수 있는 여지는 없습니다. "내가 댄서들이랑 맞먹는 실력이니 한 판 붙어 보자!"라고 나온 게 아니란 말이죠. 이채연 입장에서도 난감할 거예요. 방송국과 출연진/여론의 중간에 끼어서 곤혹스러운 처지일 테니까요. 그동안 애착을 가진 댄스에 관해서도 자신감을 잃을 법한 경험을 겪고 있는데, 도리어 자신을 향해 "왜 나왔냐"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합니까?

서두에서 "아이돌과 댄서는 레벨이 다르다"는 말을 인용했죠. 혹자들은 방송을 보며 저 명제가 입증되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채연의 춤을 오랫동안 봐 온 제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배틀 무대를 지나 팀 경연 무대로 들어가면서, 이채연은 이름값을 증명하고 있어요. 

이채연의 장점이라면 "깃털"이란 별명처럼 가볍고 유연한 몸동작과 그걸 자신 만의 느낌으로 승화시킨 춤 선입니다. 관절의 가동 범위가 넓고 움직임이 신속한데, 동작 하나하나를 처리하는 손 끝과 발 끝에 하늘 거리는 곡선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댄서들에 비해 힘과 기술, 창의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겠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 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는 건 기능적 퀄리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거죠. 어린 시절부터 춤이 좋아서 자기 느낌대로 춤을 추다가 아이돌을 지망하며 트레이닝을 수행했고, 두 계열의 시간이 오랜 시간 이어지고 겹치면서 빚어낸 아이덴티티겠죠. 한편으론 오랜 수련과 무대를 통해 다양한 춤을 추면서 안무 습득 및 수행 능력, 기본기를 익혔을 거고요. 

 

이채연이 소속된 원트 팀의 글로벌 평가 무대에서 이런 장점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쟁쟁한 실력자들과 한 팀을 이루다 보니 이채연이 다른 멤버들에 비해 빼어났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구멍'을 내는 일도 없이 맡은 자리를 잘 채워줬죠. 아이돌을 가르치는 댄서들이 작심하고 퍼포먼스를 보여 주려고 칼을 빼 든 군무를 이만큼 따라간다는 건 그 자체로 '탈아이돌'급 역량이라고 봐요. 이 정도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현역 아이돌? 몇 안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채연이 팀원들과 같은 동작을 어떻게 자기 느낌대로 처리하는지, 어떻게 자기보다 뛰어난 댄서들과 어우러지는지, 그러므로 팀의 무대에 얼마나 일조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원트 무대를 즐기는 포인트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죠. 

제목을 쓰며 '변명'이란 낱말을 골랐지만, 그 말의 어감이 품은 궁색한 느낌 없이 쓴 글입니다. 이채연이 보다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어요. 자기 삶에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이 쉽게 뱉는 말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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