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말하고 다니진 않지만, 유럽 축구를 즐겨 본다. 그중에서 주로 바르셀로나 경기를 본다. 리오넬 메시 때문이었다. 메시는 내가 본 축구 선수 중 가장 축구공을 잘 다루는 선수다. 내가 보지 못한 선수를 다 합쳐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다. 메시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고 바르셀로나 역사에선 정점에 있다.
바르셀로나는 왜 이런 선수를 떠나보냈을까. 보내고 싶어 보낸 건 아니다. 팬데믹으로 재정이 악화돼 샐러리캡을 유지할 수 없었고, 자유계약 신분이 된 메시와 재계약하지 못했다. 같은 이유에서, 메시는 작년에 바르셀로나를 떠났어야 하는 선수다. 지난여름 구단에 이적 요청을 했고 그때부터 재정 상태는 악화일로였다. 메시는 일 년 사이에 마음을 돌려 재계약을 희망했지만 일 년 더 작별이 유예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유예된 시간 안에 바르셀로나가 품은 구조적 균열이 웅크려 있다. 그건 곧 강렬하고 독특한 지역주의에 절은 이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시민 구단이 직면한 모순과 혼돈이다.
카탈루냐는 전통적으로 자치 색이 강한 지역이다. 20세기 초반 두 차례나 독립 공화국 선포를 강행했다 저지당했고, 전간기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진영에 패배한 후 수십 년 동안 카탈루냐어와 깃발 사용 등을 금지당했다. 2017년에도 카탈루냐 의회는 독립을 선언했고 스페인 정부는 지도부를 연행하며 저지했다.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를 표상하는 역할을 해왔다. 로컬 기반의 조합원들, 소시오들이 참여하는 의결 구조의 시민 구단이고, 임기를 정해두고 의장을 선출한다. 축구 구단을 넘어 시민들을 결속하고 대변하는 시민 단체, 나아가 정치 기구의 성격을 가진다. 이것이 바르셀로나의 슬로건, ‘클럽 그 이상의 클럽’(mes que un club)의 뜻이다.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출신 구성원들, 보드진과 선수 중엔 카탈루냐 독립주의자들이 있다. 전임 의장 바르토메우, 바르셀로나 레전드로 유명한 사비, 현역 최고참 피케는 카탈루냐 독립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코리안 메시’ 이승우가 몸 담아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바르셀로나 유스 팀, 라마시아는 저들의 축구적·지역적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요람이다. 지역 유소년들이 입단해 축구를 배우고 성인 팀에 발탁되는 선수는 ‘라마시아 성골’로서 팀 내 입지를 얻고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카탈루냐의 지역주의가 라마시아를 거쳐 바르셀로나 특유의 축구 색깔로 전치되고, 라마시아는 바르셀로나의 두 가지 성질, 축구팀과 시민 단체를 융합하는 역할을 한다. 바르셀로나 관계자들은 ‘DNA’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쓰는데, 바르셀로나 DNA는 곧 라마시아 스타일인 한편 수백 년 전부터 전래된 카탈루냐의 지역 색인 것이다.
현재 바르셀로나가 품은 모순은 카탈루냐란 정체성 안에 외부에서 유래한 이질성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서로 다른 축구적·사회적 체제가 양립하며 ‘이중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파도가 70년대에 영입된 네덜란드인 감독 리누스 미헬스와 선수 요한 크루이프로 대표되는 더치 커넥션이다. 이들은 토털 풋볼의 창시 집단으로 유명하고 이들이 가져온 전술 사조가 스페인 식 패스 축구와 결합해 바르셀로나 특유의 점유율 축구를 낳았다. 카탈루냐의 뿌리를 뜻하는 ‘DNA‘의 모체가 더치 커넥션으로 수혈된 네덜란드 스타일이라는 아이러니다.
두 번째 파도는 90년대 이후 밀어닥친 세계화다.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 리가를 대표하는 빅클럽이 되었고, 해외 자금과 슈퍼스타가 대거 유입됐다. 조합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의 성격을 초월하는 구조적 변화다. 시민구단 형식이지만 글로벌 대기업 스폰서로 운영되는 구단, 카탈루냐의 자치성을 추구하지만 세계에서 첫째 둘째 가는 글로벌 구단이 된 현실. 이것이 바르셀로나가 직면한 정체성의 분열이다. 리오넬 메시는 Cule(바르셀로나 팬을 뜻하는 애칭)들의 자부심을 이루는 6관왕 황금기의 주인공인 동시에, 라마시아가 키워 낸 아르헨티나 선수, 바르셀로나의 신이 된 글로벌 축구 아이콘이다. 저 두 번째 파도, 카탈루냐적인 것과 글로벌적인 것의 혼종을 자신의 존재로 집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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